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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김활란 악행들

by 에쩨르 2024. 4. 9.

김활란 악행

김활란 프로필

- 출생: 1899년 2월 27일
- 고향: 경기도 인천
- 사망: 1970년 2월 10일 (70세)
- 학력: 이화학당 고등과 졸업,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학사, 보스턴 대학교 철학 석사, 컬럼비아 대학교 철학 박사.
- 경력: 이화여자대학교 초대 총장, 공보처장 등을 역임
- 종교: 개신교 (감리회)

김활란 악행

김활란은 일제 강점기 동안 여러 가지 반민족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 13, 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김활란은 일제 강점기에 여러 가지 친일 행위를 했습니다. 그녀는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 재단이사장, 대한기독교교육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일본의 식민 정책에 협력했습니다.

1936년 전후로 일본의 강경 노선에 따라 적극적으로 친일 행위를 하였으며, 강연, 논술 활동을 하면서 1941년 창씨개명 후 전시 체제에 협력하여 칼럼, 강연, 학도병 독려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1941년 임전보국단 결전부인대회에서 ‘여성의 무장’, 1942년 싱가포르 공략 대강연회에서는 ‘대동아건설과 우리 준비’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며 일제의 조선인 동원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반탁운동에 참여하고,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전시 내각에 참여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초대 총장을 맡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김활란은 일본군 징집을 칭송하며 조선인을 전장으로 내몰았고, 이화여대 학생들을 애국자녀단에 가입시켜 전쟁터에 나가 '정신대'가 되게 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또한, 해방 후에는 모윤숙과 함께 낙랑클럽을 만들어 한국 여성들이 미국 고위 관료와 미군 장교들을 접대하게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들로 인해 김활란은 대한민국 여성교육의 선구자로서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의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일제 강점기 활동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그녀의 역사적 평가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일제 강점기 활동은 오늘날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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