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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이승만=런승만의 영화 건국전쟁

by 에쩨르 2024. 2. 15.

 

 

<건국전쟁>

만 전 대통령의
삶과 업적, 그리고 건국을 위한 투쟁과 희생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 1910년, 일제강점기.
이승만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미국 정부와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합니다.

-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독립합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반으로서 국제인정을 받고,

1948년에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이승만은 미국과 유엔의 지원을 받아 북한의 침략을 막고,
한반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합니다.

- 1954년, 미국을 방문한
이승만은 맨해튼의 '영웅의 거리'에서 열린 카퍼레이드에서

100만 명의 미국인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이승만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입니다.

이승만은 하야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이승만은 1965년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한동훈은 12일 영화를 관람한 후 "그분(이 전 대통령)의

모든 것이 미화돼야 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굉장히 중요한 시대적 결단이 있었고,

그 결단에 대해 충분히 곱씹어 봐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 자신이나 곱씹어주세요)

 

이승만 = 런승만

'런승만'은 이 전 대통령이 한국전쟁 당시

정부 방송을 틀어 놓고 대전으로 피난 간
사실을 비판하는 말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6월 27일 새벽 4시에 서울을 떠나 대전으로 피난했습니다.
그는 피난을 비밀로 하고, 국민들에게는 서울을 사수하라고 방송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한강 다리 폭파로 인해 희생되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대전에서도
7월 1일에 부산으로 다시 피난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국가 원수로서의 책무와 국민의 안위를 저버린 것으로 비난받았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정부 방송은 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연설과 국민들에게 전시 노력을 요구하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 초반에 두 번의
라디오 특별방송을 했습니다.

첫 번째 방송은

6월 28일 오후 2시에 대전 충남도지사 공관에서 HLKA 서울중앙방송의 전파로 전국에 중계되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 방송에서 미국과 유엔의 원조가 오고 있다고 알리고,

국군과 경찰에게 사의를 표하고, 국민들에게 용기와 애국심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두 번째 방송은
6월 29일 오후 2시에 부산에서 HLKA 서울중앙방송과 HLKB 부산방송의 전파로 전국에 중계되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 방송에서 미국과 유엔의 원조가 도착했다고 알리고,

국군과 경찰에게 감사와 격려를 표하고, 국민들에게 전시 노력을 기하고, 공산주의자의 전향을 촉구했습니다

'런승만'이라는 말은
이 전 대통령의 피난을 조롱하고,
그가 국민을 적으로 여겼다는 것을 비판하는 의미
입니다.

런승만 이외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말들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독재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하고,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부정선거와 부패를 저질렀다는 주장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으로 하야했습니다

1919년 건국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를 통해 자신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를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다양합니다.
일부 국민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전쟁을 극복하고,
한미 동맹과 농지개혁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다른 일부 국민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하고, 부정선거와 부패를 저질렀으며,

국민을 버리고
피난을 갔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공과 과를 모두 감안해서

잘한건 인정하고 못한건 비판하는게 당연한게 아닌가?

보수쪽 사람들이 무조건
칭송하고 존경만하고
잘못한 지적에는
지랄발작을 부리니
공보다는 과 더 많이
부각되는 겁니다
이 답답한 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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